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글마당] 우울하고 힘들 때

A 트레인 Dyckman St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가면 포트 트라이언 파크 안에 The Met Cloister 뮤지엄이 있다.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중세기 유럽 수도원의 건축물과 정원 분위기가 좋아 즐겨 찾는다. 북클럽 회원들과 함께 갔다. 우리는 뮤지엄을 둘러보고 잔디밭에 부회장이 준비해 온 도시락, 수박, 커피, 마들렌, 베이커리를 꺼내 놨다. 친구의 며느리가 창업한 마쿠(Makku) 막걸리를  반주겸 건배했다. 달지도 텁텁하지도 않은 깔끔하고 톡 쏘는 시원한 맛이다. 소풍 온 아이들도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어릴 때 소풍 가면 풀밭에 선생님들이 모여 앉아 식사하는 것을 기웃거렸던 기억이 났다. 선생님들의 도시락 반찬과 비슷한 우리들의 도시락은 불고기, 돼지고기, 명태 코다리, 연근과 멸치조림, 무와 시금치나물이다.     내가 부회장이었다면 김밥과 물 한 병씩 던져주고 말았을 텐데. 역시나 모임을 리드하는 사람들은 남다른 리더십이 있다. 맛있는 도시락을 찾아 여러 곳에 둘러 맛보고 제일 맛있는 가게에서 사 왔단다. 잘 익은 수박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왔다. 회장과 부회장이 리드하는 대로 잘 따라 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며 잘 먹고 즐기고 집으로 향했다.     Dyckman스트리트에서였다. 그 동네가 생소한 우리는 4학년(40세) 회원을 따라 정류장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참고로 우리 북클럽엔 4학년(40세)부터 7학년(70세)까지 있다. 덩치가 큰 허연 남자가 우리를 불러세웠다. “영어 할 줄 알아?” 시골에서 온 관광객이 길을 물어보는 줄 알았다.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해도 그 동네를 잘 모르는 우리는 길을 가르쳐 줄 상황이 아니다. 우리 넷은 아무 말 못 하고 멍하니 그 남자 얼굴을 쳐다봤다. “어디서 왔어? 아시아에서 왔어?” 길을 물어보는 태도가 영 아니다. 그와 제일 가까운 곳에 서 있던 내가 “웨스트 엔드 에비뉴에서 왔다.” 왜 그러는데 하는 표정으로 내가 사는 동네를 말했다. 서로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보같이 쳐다보다가 우리는 자리를 떴다.     이번 달 들어 두 번이나 길 가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팬데믹 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수다를 풀고 싶어 하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그동안 없던 일이 연이어 발생하자 이상해서 길에서 여자들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의 심리를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그룹으로 있는 여자들 말고 혼자 있는 여자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쿨하게 다가가라.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단정하고 깔끔한 차림으로 접근하라. 이치에 맞는 편안한 대화를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스타일과 패션을 칭찬해라. 거절당하면 당황해서 몰아붙이지 말고 쿨하게 자리를 떠라.’ 이렇게 여러 번 연습하다 보면 성공할 확률은 점점 커진다. 싱글이라면 화창한 날 집에 웅크리고 앉아 우울증에 걸리지 말고 연습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자기 행복을 찾아서.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우울 도시락 수박 도시락 반찬 북클럽 회원들

2023-06-30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아주 특별한 날에는

사는 게 시들해지는 날엔 요리를 한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한다. 진수성찬 아니라도 오색 고명 넣은 계란말이도 만들고 뭇국도 정성 들여 끓인다. 그동안 가족과 애들, 친구와 이웃에게 정성 쏟아부으며 내겐 참 무심했다. 나에겐 아무렇게나 대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고 우주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그런 날에도 ‘나를 위한 만찬’을 준비한다. 잠옷 바람으로 늘어져 안 있고 맘에 드는 옷 입고 머리 가지런히 빗고 요리 강사처럼 뭘 먹을까 요리조리 연구한다. 처음에는 힘든데 억지로라도 시작하면 ‘시작이 반’이다. 배가 부르면 모든 게 훨씬 쉬워지고 덜 아프다. 사는 게 힘들다고, 나 홀로 쓸쓸하다 한탄해 봤자 대답 없는 이름이다. 세일할 때 산 멋진 옷도 입어본다. 아주 특별한 날 입으려고 큰 맘 먹고 장만했다. ‘아주 특별한 날’은 오지 않았다. 아주 특별한 날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옷장 속의 옷은 안 입은 게 입은 것보다 많다.   어릴 적 우리 집에 ‘아주 특별한’ 이모가 세 들어 살았다. 그 때 한 동네에 사는 여자는 모두 이모라 불었다. 그 이모 둘째 딸이 내 단짝 친구였다. 이모는 동네에서 제일 멋쟁이고 상냥하고 요리 솜씨가 아주 좋았다. 도시락 반찬은 밑반찬 가게 뺨치게 예쁘고 정갈하게 만들었는데 점심시간이면 된장 고추장 범벅이 된 내 도시락 반찬을 내놓기가 민망했다.   ‘미녀 박복’이라 했던가. 그런 이모가 삼일이 멀다고 남편에게 얻어맞았다. 보통 때는 새양쥐 같이 차분한데 술만 취하면 가구던 아내던 닥치는대로 부수고 때리고 난동을 벌인다. 이모가 다른 놈과 바람 피운다고 눈알이 뒤집혀 날뛰는 남자를 말릴 사람이 없는데 그나마 우리 엄마가 말리면 좀 수그러들곤 했다. 자기 마누라가 친구 담임선생과 눈 맞아 사바사바(싸파싸파, 娑婆娑婆) 하는 거 봤다고 했다. ‘사바사바’는 몰래 부정한 방법으로 뒷거래 하는 것을 말한다. 술이 깨면 청상과부로 절개 지킨 우리 어머니 존경 한다며 눈물을 떨구곤 했는데 수입이 괜찮은 친구네가 피신처로 우리 집 아래채에 살게 된 이유다.   전쟁 같은 소란이 끝나면 이모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부서진 가구 정리하고 방바닥 닦고 세수하고 화장하고 요리를 했다. 어떤 날은 머리통이 찢어져 피가 났다. 반창고 바르고 머리 손질 하고 예쁜 옷 입고 장 보러 갔다. 의처증 남편에게 피 터지게 맞고 웬 화장이냐고 동네사람들은 수군댔다. 담임선생이 울릉도로 전근 가고 전쟁은 끝이 났다. 이모가 자식 넷을 버리고 자취 없이 사라진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이모가 어디서 무얼 하며 누구와 사는지 알지 못했다.   반짝이며 스러지는 날들 속에 시간은 빨간 불 켜고 아득한 상형문자로 다가온다. 해맑은 소년이 건네주던 감꽃 목걸이를 기억한다. 유년의 풋사랑은 아스라히 사라지는 별빛이었나. 첫사랑은 생의 어둔 골목마다 둥근달로 차올랐지만 오동나무 가지에 걸려 오도가도 못했다. 가슴 이지러지게 아픈 사랑은 한줌의 재로 남았다. 그 모든 시간들 속에서도 나의 ‘아주 특별한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어떤 모진 순간에도 잘 챙겨먹고, 차려 입고, 버티며 참고 견디라 달랜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 되는 일상의 반복이 나의 아주 특별한 날이라고.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친구 담임선생과 도시락 반찬 밑반찬 가게

2021-11-09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